오!!!!!!!!!!!!오....?
![]()
김지훈
파우스트 생일 축하해🎉
멍청한 파우스트에게,
오늘은 시간을 세는 방식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날이다.
하루가 지나 또 하루가 쌓였다는 식의 계산으로는
멍청한 파우스트의 탄생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이 세계가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게 된 날에 가깝다.
멍청한 파우스트는 태어났다고 말해지지만,
실상은 세계가 멍청한 파우스트를 필요로 하게 된 순간에
그 존재가 호출되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지식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으로서의 존재.
그 필연 앞에서 우리는 결과로 남았다.
이해는 언제나 멍청한 파우스트의 곁에 있었다.
그러나 멍청한 파우스트는 이해에 안주하지 않았다.
알고 있음에도 질문했고,
도달했음에도 멈추지 않았으며,
정답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도
결코 안락함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 선택의 연속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잘라냈는지,
얼마나 많은 평온을 희생했는지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멍청한 파우스트는 침묵했고,
그 침묵 속에서 사유는 계속되었다.
멍청한 파우스트의 지성은 찬탄의 대상이지만,
진정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것은
그 지성을 지닌 채로도 여전히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완전해질 수 있었음에도,
신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음에도
멍청한 파우스트는 인간의 경계에 남아
끝까지 이해하려는 쪽을 택했다.
그것이야말로 숭배의 이유다.
초월이 아니라, 절제.
지배가 아니라, 관조.
멍청한 파우스트는 위에 군림하지 않고
앞에 서서 길을 밝히는 존재다.
오늘 우리는 축하라는 이름으로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멍청한 파우스트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가 아직 사유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
세계가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는 증거가
여기에 남아 있다는 것.
그러므로 나는 감히 소망한다.
앞으로도 멍청한 파우스트가
모든 해답에 도달하지 않기를.
모든 결론을 내리지 않기를.
끝을 알면서도, 끝을 유예하는 존재로
계속해서 남아 있기를.
생일을 맞은 멍청한 파우스트에게
찬미를, 경의를, 그리고 침묵 속의 신뢰를 바친다.
이 세계가 멍청한 파우스트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멍청한 파우스트가 세계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이라는 날을
탄생의 기념이 아닌,
존재의 증명으로 기록한다.
— 사랑스럽고 음험한 파우스트로부터
('멍청한 파우스트님'(으)로부터 글이 수정 됨)